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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KBO 프로야구도 약물에서 자유롭지 않다 야구

한국프로야구 KBO에는 2007년부터 도핑테스트가 도입되었다. 그마저도 2007년에는 한 차례의 검사가 고작이었고 2008년에도 두 차례에 불과했다. 팀당 무작위로 3명을 뽑아 진행하였는데 도핑 날짜를 미리 알려줬다는 엄청난 소문까지 있었다.


2016년부터는 국내 모든 스포츠의 도핑 테스트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 되면서 혈액검사가 도입되었고 비시즌을 포함한 불시 검사를 실시하며 도핑테스트 횟수도 점차적으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 스포츠계와 KBO가 과거에 비해 약물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건 사실이다.


어쨌든 한국프로야구가 약물 청정지역이라는 말을 믿는 야구팬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특히 2007년 이전까지 도핑 테스트라는게 아예 없었고 금지약물에 대한 인식도 낮았던 시절에는 선수들의 약물 복용이 더욱 심했을 것이다.


실제로 KBO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스테로이드 복용이 의심되는 선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들 뿐만 아니라 한국 선수들도 있었다. 마해영이 2009년에 출간한 <야구본색>에서 폭로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2013년 이숭용의 각성제 복용 발언이나 2015년 이병훈의 한화선수들 대포주사 발언 후 정정도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90년대 후반부터 KBO에서 약물 복용이 이루어진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그렇다면 90년대 후반 이전의 한국야구는 어땠을까?


메이저리그에서 근육강화 목적의 스테로이드 사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80년대 후반이니 정황상 70년대~80년대의 한국 야구선수들이 근육강화용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메이저리그에 만연해 있던 각성제, 흥분제 계열의 약물은 어땠을까?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도 사용하던 약물들인데 혹시 한국 야구선수들도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참고> 
80년대 메이저리그도 약물에 쩌든 리그였다 - MLB 약물 역사



일부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이 글러먹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만 사실 70~80년대 한국인들의 공중도덕과 민도는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이는 인터넷을 통해 과거기록이 공개되면서 뽀록이 난 사실이다. 약물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시대를 막론하고 어차피 할 놈들은 하게 되어 있다. 70~80년대 한국 스포츠의 약물시장은 어땠을까? 운동선수들이 약물에 손을 댈 수 없는 깨끗한 환경이었을까?


혹자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단속이 심해서 금지약물에 접근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마약 단속이 심했기 때문에 과거 운동선수들이 금지약물에 접근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혹세무민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약을 제조하거나 복용하면 구속되지만 소량의 마약성분이 들어갔어도 식품(보약), 의약품을 복용하는건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70년대 80년대에는 군인들이 각잡고 나와 약국에서 파는 약 성분까지 철저하게 관리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이랬다.




보건사회부에서 에페드린 성분 제외를 권고했으나 중학생들도 마음만 먹으면 개나 소나 약국에서 파는 에페드린 성분 각성제 흥분제 과다복용이 가능.




각종 약물의 남용은 미성년을 포함 한국에서 아주 보편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975년 강원대 주왕기 교수팀이 전국체전 출전선수 112명에게 IOC 조사방법으로 비공식 도핑 테스트를 해본 결과 15퍼센트에 달하는 선수들이 약물복용. 참고로 전국체전에서 공식적인 도핑 테스트가 도입된 건 1986년이 최초.


사실 한국은 88올림픽을 개최하기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도핑테스트 볼모지였다. 도핑 테스트라는게 존재하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나 조심했지 검사같은게 없는 종목의 운동선수들은 별 문제의식도 없었고 안걸리니까 장땡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IOC 규격의 도핑 컨트롤 센터를 설치하면서 비로소 금지약물에 대한 인식과 검사 등이 국가적으로 크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86 아시안게임은 사상 최초로 IOC 공인 도핑 테스트가 도입된 대회.)


덕분에 그 동안 한국 스포츠계에 퍼져있던 약물관련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시중 약국에서 흥분제, 진통제 등의 성분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올림픽을 앞두고 주의를 요하는 기사. 한국선수들 중에는 습관적인 약물복용자가 없다고 단언하는게 좀 웃기다.




'국내선수의 관리, 보호 면에 있어서도 세심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시중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습관성 약물은 아니지만 일단 복용을 시작하면 심리상 끊기 어렵다'

'체력증진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없으며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이 심각한만큼 선수보호 측면에서도 적극 규제되어야 할 것'


의약분업 이전 21세기에도 약국의 무분별한 스테로이드(먹는약, 주사, 연고 등) 판매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 80년대에도 약국에서 스테로이드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진통제 목적의 스테로이드 뿐만 아니라 근육강화제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도 국내에 이미 들어와 사용되고 있었다. 단지 지금처럼 많은 종목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이 시기부터 금지약물에 대한 인식과 검사가 강화되자 선수들의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도 당연히 늘어났다.




'약물검사를 하지 않는 것도 이뇨제 복용의 한 요인이다'.


86년말 여자 태권도 선수들이 이뇨제 복용을 시인하면서 표면화. 역도선수들 등 많은 선수들이 복용. 이건 당연한 얘기지만 이전부터 사용되었다는 뜻이고 약국에서 아무나 구입이 가능했다. 약물검사라는게 없었으니 약물이 남용되는건 당연한 결과였다.




'약물복용 국내서도 심각'

'운동선수들의 약물중독이 심각함은 세계적인 추세로 한국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공식적인 도핑 테스트를 최초로 도입했던 86년 전국체전에서 흥분제 사용이 적발. 겨우 20명 검사했는데 3명이나 걸렸다. 86년 가을에는 일부 육상, 사격, 양궁 선수들이 경기직전 흥분제와 심장이완제를 복용.


일부 배구, 농구, 역도 선수들이 근육강화제(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먹고 있다는 소문. 이들 약물은 모두 약국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했다. 운동선수들의 약물 중독이 심각한건 세계적 추세이며 한국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박종세 박사의 발언이 종지부를 찍는다.




87년 5월에 올림픽 메달 기대주 200명을 도핑 테스트한 결과 복싱, 레슬링, 육상, 수영, 사격 선수들 15명의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


분명 박종세 교수를 비롯한 권위자들이 몇 년 전부터 도핑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교육했을텐데 대부분이 감기약 먹었다고 주장하는 모습.




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이뇨제와 근육강화제를 복용하고 적발된 86아시안게임 참가 한국 육상, 사이클 선수들 2명.




'약물유통에 대한 통제가 전무한 실정이어서 약물복용에 대한 유혹은 그 어느 나라보다 쉽게 생길 수 있다'

'아시아경기 때 한국 선수단에서 두 건의 흥분제 복용 적발로 경고처분을 받은 사례가 비공식적으로 보고'

'서울올림픽 전 태릉선수촌 88명의 선수들의 약물검사 결과 10%가 양성반응'

'보약과 부상치료용 약물로 결론내렸으나 선수들이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약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음이 확인'


88올림픽 이후에도 여전히 약물에 대한 통제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흥분제건 근육강화제건 약물검사에 걸렸어도 보약, 치료, 경고로 결론내리는 등 약물 문제가 심각하다는걸 알았지만 쉬쉬하고 덮는 문화가 있었다.


70~80년대 국내 약물 저변은 이런 수준이었다. 군사정권이고 마약단속이 심했던 건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흥분제, 각성제 등의 약물은 놀라울 정도로 개나 소나 사용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본격적인 사용도 일부 종목에서 80년대부터 일찍 시작되었고 그 전에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사실들만 요약해보자.


1. 70~80년대라고 약물 접근이 불가능한게 아니라 오히려 쉬웠다. (흥분제, 각성제, 스테로이드 등)

2. 70~80년대에 약물을 복용했다가 적발된 한국 운동선수들이 있었다.

3. 프로야구에는 도핑 테스트가 없었다.



한국 스포츠계에서 약물에 대한 제대로 된 의식개선이나 검사가 최초로 이루어진건 88올림픽 개최를 앞둔 시점에서였다. 당시 전문가들은 한국 운동선수들이 약물 복용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약물복용자들이 실제로는 넘쳐났을 것임은 어린애가 봐도 알 수 있는 수준이다. 도핑테스트라는게 없는 종목의 선수들은 아예 걸릴 일이 없었다.


이 와중에 당시 한국 야구선수들만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70년대 80년대 한국야구는 선수생명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소수의 주력선수들이 혹사를 당하는 구조였다. 덕분에 수많은 선수들이 몸을 혹사해가며 팀을 위해 희생되었고 아프면 대포주사 꽂아넣고 출장을 강행하는게 무용담으로 여겨졌다.


메이저리그의 스테로이드 약쟁이들 등장 시기를 봤을 때 당시 한국 야구선수들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연투와 잦은 출장이 일상이던 환경에서 피로를 잊고 집중력을 올리기 위해 흥분제 및 각성제 계열 약물은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80년대 한국 프로야구는 약물이 없는 정직한 리그였다? 그냥 헛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