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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보다 극적이었던 곽태원의 메이저리그 계약 야구

최동원의 메이저리그 계약과 관심도는 중증 최빠 종교에 있어 성경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


한미일 현대야구사에 비교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존재이며 메이저리그가 스스로의 장벽을 걷어내고 무릎을 꿇은 유일무이한 우월자라는 과대망상을 배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메이저리그 계약서와 외신기사이기 때문이다.


일단 최빠를 떠나서 최동원이 대단한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시아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부족하던 80년대에 40인 로스터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선수였고 당시 외신기사를 종합해보면 평균이상의 슬라이더와 제구력을 가졌고 메이저리그에서 당장 뛸 수 있는 즉시전력감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KBO 출범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 메이저리거의 꿈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압력이라는 외부요인 때문이었다는걸 감안해도 결국 MLB에서 뛰지 못했는데 메이저계약과 외신기사만으로 세계최강이라 확정하고 실제 업적을 남긴 다른투수들까지 깔아뭉개는 중증 최빠 논리는 정말 상태가 심각하다.


MLB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받고도 바보로 전락하는 선수들이 많고 메이저리그 계약과 즉전감 평가가 세계최강을 보장하는게 아닌데도 80년대에 받은 계약과 평가는 실패라는게 있을 수가 없으며 최동원이 무조건 우주최강이라고 한다.


과대망상 최빠논리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정말로 80년대 MLB로부터 즉시전력감 평가를 받고 계약을 제시받은 아시아 투수는 최동원이 유일무이했을까?


웃기게도 80년대 외신기사로 우주최강 판타지소설을 쓰는게 가능하다면 최빠 교주가 조루라고 무시하는 대만의 궈타이위안으로도 판타지 소설이 가능하다.



우선 곽태원에 대한 외신은 신문기사가 아닌 1993년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칼럼 딱 하나였다.



여기를 보면 토론토의 스카우트였던 웨인 모건이 영입을 시도했던 아시아 투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최동원을 포함 박동희나 곽태원 등도 있다. 웨인 모건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84년 올림픽이 열리기 전 겨울 대만으로 날아가 곽태원의 영입을 시도했고 구두 계약까지 받았으나 막상 84 LA올림픽이 끝나자 곽태원은 토론토가 제시한 액수보다 적은 돈에 일본 세이부와 계약을 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9년 뒤인 1993년에 나온 칼럼이라 저것만으로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애매하다. 아무래도 84년 LA 올림픽 당시의 미국 현지 신문기사들을 살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The Pittsburgh Press 1984-7-22)


LA올림픽 개막 1주일 전에 나온 기사. (대만에 대한 언급을 하며)미국팀 감독 로드 드두 曰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감탄을 주었던 어린 선수들을 티비로 봤던게 생각나는가? 그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고 몇몇 투수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던질 수 있다". 분명히 보고싶을 것이니 치우룽 리우와 곽태원의 이름을 적어두라.


참고로 대만은 70년대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를 휩쓸다시피 제패하면서 주최측 미국이 대회 룰까지 바꾸게 만들었을 정도. 대만야구사의 황금세대였다. 곽태원은 올림픽 이전부터 큰 기대주였는데 구체적인 임팩트는 아직 없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올림픽이 시작되자 엄청난 관심과 평가를 받게 된다.



(Courier Post 1984-8-1)


(The Journal News 1984-8-1)


(The Cincinnati Enquirer 1984-8-2)


미국팀에게는 다소 무서운 밤이었다. 5피트10인치 154파운드에 불과한 상대투수는 메이저리그의 열기(major-league heat)를 던졌다. 대만 선수들은 리틀리그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경기를 리드했고 12탈삼진을 기록한 곽태원은 순항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곽태원은 위기 때마다 오히려 불 속에 더 많은 석탄 덩어리들을 던지며 더 큰 불길을 가지고 나오는 듯 했다. 스피드건으로 투수들의 구속을 측정한 이 곳의 다저스 관계자들에 따르면 곽태원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90-91마일이었고 95마일짜리들도 있었다. 곽태원은 6회까지 8개의 탈삼진을 잡았고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 같았다.



(The Los Angeles Times 1984-8-1)


미국은 세계 최고의 아마추어 투수 중 하나로 여겨지는 22살 우완투수 곽태원과 맞섰다. 곽태원의 패스트볼은 다저스 스피드건에 95마일이 찍혔고 12개의 탈삼진을 잡고 1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Asbury Park Press 1984-8-1)


파이어볼러 곽태원에게 6이닝 동안 삭제를 당한 미국팀은 존 마자노의 홈런과 윌 클락의 적시타로 7회를 폭발시키며 2대1로 승리.



(Pittsburgh Post Gazette 1984-8-2)


이 역사적 사건의 진정한 주인공은 22살의 대만투수 곽태원이었다. 곽태원은 12개의 탈삼진을 잡았고 패스트볼이 90마일 중반대를 기록했으며 95마일 짜리도 있었다. '스피드건 과장'이라는 트집을 잡을 수도 있고 프레스 박스의 대부분의 백발 글쟁이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곽태원의 우월함에 의문을 가지지 못했다. 미국팀 포수 존 마자노는 "곽태원은 경기 내내 단 2개의 실투만 던졌고 나한테 던진 공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했다.


마자노는 곽태원은 미국 올림픽팀이 본 "최고 중 하나"라면서 "우리는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들이 13명이나 되는 팀인데 곽태원이 우리에게 한 짓을 보라"고 말했다. 마자노에 따르면 곽태원은 경기 내내 슬라이더와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찔렀다(hitting the edges all night with sliders and fastballs).



(The Los Angeles Times 1984-8-3)


미국팀 감독 Dedeaux가 말하기를 George(대만 타자 차오 시치앙의 별명)는 메이저리그 파워를 가졌지만 진짜 빅리거 재목들은 투수들로 특히 미국을 상대로 95마일 패스트볼을 선보인 곽태원이다.



(St Louis Post Dispatch 1984-8-3)


"이 녀석들은 야구 할 줄을 안다."

박스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LA다저스의 선수 인사관련 부사장 알 캄파니스가 말하길 "저 대만투수는 정말로 던질 줄을 안다. 패스트볼은 경기 내내 90마일대를 기록했고 95마일짜리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 대만 투수는 22살의 마른 우완 투수 곽태원으로 12개의 탈삼진을 잡았다. 곽태원은 일본 도쿄 자이언츠와 도쿄 라이온스에게서 제시받은 오퍼를 고려중이다.



1984년 LA 올림픽 미국과 대만의 야구경기는 7월 31일에 열렸다. 다음날인 8월 1일부터 경기에 대한 신문기사들이 나왔고 곽태원의 활약을 소개하는 기사들도 나온다. 곽태원은 당시에 이미 아마추어 투수들 중 세계최고 클래스로 구분되고 있었고 8이닝 9피안타 2실점(1자책) 1볼넷 12탈삼진으로 패전투수가 되기는 했으나 호투를 통해 명성을 입증하며 커다란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준결승 일본전에서는 4.2이닝 6피안타 1실점 상황에서 오른쪽 정강이에 타구를 맞고 강판.


미국전 평균구속은 90~91마일에 95마일 짜리 광속구도 있었고 이게 얼마나 빠른 수치였는지 스피드건 오류가 아니냐는 트집까지 있을 정도였다. 파이어볼러라는 표현부터 메이저리그의 열기를 던졌다는 표현이나 제구력 등 구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있고 곽태원을 상대한 미국 타자는 물론 미국팀 감독 로드 드두와 LA다저스의 알 캄파니스 등 MLB 고위인사들의 높은 평가도 나오며 메이저리그 즉시전력감 평가를 받았다.


겨우 미국전 한 경기로 이런 평가가 나온건 상당히 빠른 공을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추어 국제대회 특성상 큰 변별력이 없지만 당시 미국 올림픽팀은 역대 최초로 특급 유망주들 위주로 구성된 스쿼드였다. 비록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선발 존 후버가 7.2이닝 6실점으로 난타당하며 6대3으로 패배하긴 했으나 20명의 선수들 중 13명은 이미 올림픽 시점에 MLB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들이었고 훗날 다시 1라운드 지명을 받는 선수들까지 합치면 18명에 달했다. 마크 맥과이어, 배리 라킨, 윌 클락 등 족적을 남긴 강타자 유망주들이 있었다.


곽태원은 훗날 NPB에서 별로 대단할게 없는 성적을 기록했는데 어쨌든 84년 올림픽 당시에는 저렇게 현지 기사내용처럼 메이저리그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건 사실이다.


그리고 St Louis Post Dispatch 기사에 특이한 부분이 보인다. 일본의 도쿄 자이언츠와 라이온스의 오퍼를 고려중이다?


최동원의 경우를 보면 최동원이 한국에서 토론토와 사인을 한 날짜는 1981년 9월 15일이었다. 그러나 미국 외신에서 최동원에게 오퍼를 했다는 기사가 나온 건 9월 17일이었고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는 9월 23일자였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신문기사들 뿐이었기 때문에 시간차이가 나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선수영입 과정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던 시대도 아니었다.


당연히 곽태원에 대한 기사는 1984년 7월 31일 미국전 호투 다음날인 8월 1일부터 나왔다. 그런데 불과 3일 뒤인 8월 3일에 아마추어 허접(?) 투수의 일본 프로팀 오퍼이야기까지 나오다니? 이건 딱 MLB 구단들이 곽태원에게 접촉을 시도했을 때 곽태원은 이미 일본팀에서 뛰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최빠 교주에게는 크나큰 불행이겠지만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외신이 존재했다.



(The Gettysburg Times 1984-8-3)


화요일 밤 오리지날 드와이트 구든을 보았다. 그의 이름은 곽태원. 곽태원은 95마일의 빠른 공을 던지고 2피트가 꺾이는 커브볼을 던진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자이언츠나 다른 팀에서 뛰기로 계약을 할 예정이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다. 나쁜 소식은 그 자이언츠가 도쿄 자이언츠라는 점이다.

화요일 밤 다저 스타디움에서 곽태원은 미국팀에게 용의 불(dragon fire)을 내뿜었다. 팀의 지원을 못 받고 불운이 겹치며 홈런 하나를 허용하고 2대1로 패배했다. 하지만 12개의 탈삼진을 잡기도 했고 프레스 박스의 귀재들이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곽태원을 영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곽태원은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드와이트 구든이다".

"나는 곽태원에게 미국에서 뛸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저 발언들은 곽태원이 7이닝 무실점으로 미국인들을 짓밟으면서 프레스 박스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그들은 곽태원과의 접촉을 위해 인터뷰룸으로 내려가고 싶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모든 중국 소년들은 메이저리거로 성장하는 꿈을 꾸는게 아니었던가?

곽태원은 미국 프로팀에서 뛰는 것에 대해 완전히 관심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가지 이유는 일본식 생활이 더 편해서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곽태원 영입을 위해 쟁탈전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진 5개의 일본 프로팀 중 한 팀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보너스 입찰이 1천만엔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팀 구단주들은 투기마냥 돈 판을 벌인다. 비싼 미국 달러로 환전해봐도 1천만엔은 대략 40만 달러이며 이 액수는 내가 아는 어떤 미국 구단들이라도 검증되지 않은 투수에게 지불할만한 금액보다 큰 액수다. 얼마나 빠른 공을 던지던지 간에 말이다.

미국 타자들은 평균 92마일과 95마일까지 나온 곽태원의 패스트볼 스피드에 대해 약간 회의적이다. 그들은 스피드건 다이얼이 분명히 엔화로 표시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비쳤다.

윌 클락은 "우리에게는 곽태원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한 명 있는데 그 선수도 95마일까지 나온 적은 없다"고 했다. 윌 클락에게 곽태원은 크게 신비로운 인물은 아니었다. 곽태원은 첫 타석에서 윌 클락을 아웃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두 타석에서는 결승타를 포함한 중견수쪽 안타를 각각 허용했다.

윌 클락이 말한 미국의 강속구 투수는 바비 위트로 밝혀졌는데 곽태원을 상대로 피칭하지는 않았다. 존 후버는 "바비의 공은 가라앉기 때문에 실제만큼 빠르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곽태원의 공은 똑바로 강력하게 들어오며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곽태원은 통역을 통해 "오늘 퍼포먼스는 내 베스트가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몇 년 전 윌리엄 스포트에서 곽태원을 봤던 인상이 있다. 대만의 리틀리거들이 이곳 미국으로 와서 미국의 소년들을 때려눕혔던 시기였다. 다소 약화된 LA올림픽에서 만큼이나 큰 미스매치였다.

대만은 8회 연속으로 리틀리그 월드 시리즈를 우승했고 주최측이 룰을 바꾸게 만들었다. 미국 선수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정말 혁신적인 악당이 아닌가? 소름이 돋는다.

곽태원은 "나는 리틀리그시절 미국에서 뛴 적은 없다"고 했다.

어째서일까?

"나는 겨우 1979년부터 피칭을 시작했다. 그 전에 나는 유격수였다"

따라서 우리는 아마도 월드시리즈를 진정한 의미의 월드시리즈로 만들지 않는 이상 곽태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많은 미국 선수들을 지켜볼 것이다. 곽태원에게 홈런을 쳐낸 존 마자노, 대만 타자들을 4안타 1실점으로 막아낸 존 후버, 그리고 윌 클락같은 선수들을 말이다.

(후략)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곽태원 본인 의지로 일본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기사가 6년 뒤에도 나온다.



(Pittsburgh Post Gazette 1990-8-30)


모든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중남미 야구계를 수색하는 동안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괌이나 호주 멜버른같은 구석구석 틈새에도 스카우트들을 보낸다. 때문에 토론토의 캘리포니아 스카우트 중 하나인 웨인 모건이 1984년 LA 올림픽에서 대만선수 하나를 극찬하기 시작했던 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오리엔탈 특급"이라는 닉네임의 96마일 파이어볼러 곽태원은 왕정치 이후 대만에서 나온 최고의 선수로 여겨진다. 곽태원은 들리는 바에 의하면 블루 제이스로부터 1985년 1백만 달러의 계약을 제시받았지만 고향에서 가까운 일본의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뛰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 곽태원과의 협상과정에서 모건은 곽태원이 어찌나 미국의 야구 스타들에 대해 무지했는지 놀랐다. 또한 모건은 블루 제이스가 무엇을 오퍼하던지 곽태원은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웨인 모건은 "문화적인 문제였다. 대만인들은 미국인들이 더 크고 더 강하다고 느끼며 더 낫다고 여긴다. 하지만 96마일의 공이라면 곽태원은 어디에서든지 파워 피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계약을 제시받았으나 곽태원 본인 의사로 일본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는 결국 사실이었다. 후대에 나온 이야기가 문제가 아니라 LA올림픽 당시 현지 신문기사가 모든 걸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동원이 낫냐 곽태원이 낫냐가 쟁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최동원이 곽태원보다 좋은 투수인건 당연하다고 본다. 곽태원은 NPB에서 내구력도 별로였고 성적도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곽태원이 얼마나 못났는지 최동원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훗날 일본에서 별로였어도 어쨌든 84년 당시에 곽태원이 MLB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계약을 제시받은건 맞다는 것이다. 외신기사 평가와 계약만으로 최동원을 현대야구사에 비교대상이 없는 세계최강의 투수라 상정하여 찍어누르고 다른 선수들은 죄다 병신취급하는 최빠 교주의 과대망상부터가 어차피 틀렸다는 것이고, 그런 논리라면 허접 곽태원도 최동원 못지 않은 우주최강드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만 노인네 네티즌 하나가 곽태원의 저 외신들을 가지고 역사상 비교대상이 없는 우주 최강의 투수라고 박박 우기면 얼마나 웃길지를 생각해보자.


서두에서 말한대로 최동원이 대단한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프로야구 출범과 정착에 큰 기여를 했고 메이저리그 계약과 평가를 종합했을 때 토론토의 선발투수로서 성공했을 확률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확률이 그렇다는 것이고 아쉽게도 진출하지는 못했다.


최동원상 제정의 의미가 그런 것이다. MLB 무대라는 개인의 꿈은 희생되었으나 한국야구 발전에 크게 공헌했고 시대를 앞선 기량을 가졌던 에이스 최동원을 기리고 두고두고 추억하는 것.


그러나 중증 최빠 종교는 단순히 최동원을 재조명하는게 아니라 신격화에 불과하다. 자의가 아닌 정부압력 때문이긴 했으나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평가를 입증할 기회가 없었는데 계약과 평가만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는 수준도 아니고 최동원 절대 우주최강 SF 판타지 소설이나 써대고 최동원을 중심으로 모든요소를 뻥튀기 혹은 폄하하는게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한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