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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이 상대한 국제대회 타자들의 정확한 수준과 퍼포먼스 야구

최동원이 한미일 현대야구 역사상 비교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 최강이었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모든걸 끼워맞추다보면 모든 요소가 최동원 신격화를 중심으로 은근슬쩍 유리하게 거짓해석되고 필요이상의 뻥튀기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중 대표적인게 최동원의 국제대회 퍼포먼스다. 최동원 혼자서 국제대회 북중미 강타자들을 제압했고 이를 토대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우주최강 견적이 가능하다는 식의 결론이다. 그러나 당시 국제대회의 실상을 보면 이는 단순히 최빠 교주의 과대망상일 뿐이라는걸 확인할 수 있다.



최동원이 상대한 국제대회 타자들 수준


우선 당시 국제대회 타자들의 정확한 수준에 대해서 알아보자. 중증 최빠 논리에 의하면 최동원이 국제대회에서 알루미늄배트와 냉전시대의 정신력으로 중무장한 북중미의 최강 스쿼드를 상대로 압도적인 투구를 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이건 사실 걸러들어야 할 부분이 많다. 최동원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으니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최동원이 참가한 정규 국제대회는 다음과 같다. 빨간색으로 표시한게 최동원이 에이스로 호투한 대회들이다.


1977 니카라과 대륙간컵

1978 이탈리아 세계선수권

1980 일본 세계선수권

1981 캐나다 대륙간컵 (이 대회로 토론토와 메이저리그 계약)

1982 한국 세계선수권


당시 야구 국제대회의 양대산맥은 세계선수권과 대륙간컵이었다. 세계선수권의 영문 이름은 Amateur World Series였다. 이후 야구월드컵이라 불리우는 그 대회다.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사람이라면 바로 눈치챘을텐데 세계선수권이나 대륙간컵이나 모두 프로선수들이 나오지 못하는 아마추어 대회로 미국이나 일본에서 신경도 안쓰는 3류 대회였다.


아마추어를 가장한 프로팀이었던 쿠바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다. 미국은 마이너리거들도 프로들이라 참가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무려 대학생들이 나왔다. 경험도 적고 기량도 만개하지 않은 선수들인건 그렇다쳐도 그마저도 드래프트 최상위라운드 지명 선수들 위주도 아니었다. 일본은 사회인리그 선수들과 소수의 대학생들이 나왔다. 그 외 나머지 국가들은 사실상 따질 가치도 없다는건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빠 교주의 판타지 소설을 읽다보면 최동원이 호투한 대회만 메이저 대회로 둔갑이 되고 최동원이 부진하거나 불참하여 다른 투수가 호투하기라도 한 대회는 북중미 몰락 허접 정치적 대회로 둔갑이 된다. 그 놈이 그 놈인 대회인건 똑같은데도 말이다.


19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에서 최동원은 만 19세 미완의 대기로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선희는 에이스로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 다승, 구원 3관왕을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쿠바가 참가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중증 최빠 논리상 허접대회로 매도된다.


1980년 일본 세계선수권에서 최동원은 팔꿈치 부상 여파로 부진했는데 이선희가 다시 한 번 에이스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준우승과 함께 올스타, 다승, 이닝 3관왕을 차지했다. 최빠 교주가 이선희를 괜히 필요이상으로 허접 취급하는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1982년 한국 세계선수권에서 최동원은 81년의 부상으로 인해 부진했는데 대신 선동열이 에이스로 떠오른다. 덕분에 쿠바 불참인데다 국내 개최라는 점을 들어 허접 정치적 대회로 매도가 된다.


사실 어떤 투수든지 잘 던질 때도 있고 못 던질 때도 있는 법이다. 선수생활을 하다가 부상도 입고 컨디션 난조도 겪고 그런건 누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증 최빠 논리상 최동원이 완전무결 우윳빛깔 우주 최강의 투수라는 신격화를 상정하다보니 괜히 다른 선수들까지 폄하하게 되고 똑같은 대회라도 최동원이 못 던지면 허접대회요 잘 던지면 메이저대회가 되는 웃기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대륙간컵


세계선수권


최동원 활약 시기에 맞춰 세계선수권은 76년 자료부터다. 당시 추세를 보면 웃길 정도로 쿠바가 우승을 휩쓸다시피 했다. 미국, 일본, 한국은 2위권 그룹이었고 미국이 약간 더 우세한 편이었다. 각 국가들의 선수구성을 자세히 알아보자.



1.쿠바


쿠바가 아마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웃기는 내막이 있다. 쿠바는 19세기 후반부터 야구가 최고의 스포츠였고 프로리그도 일찍 생겼다. 그러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정부가 들어서면서 1961년 모든 스포츠의 프로 시스템을 폐지했고 야구선수들도 아마추어 신분이 되었다.


쿠바 선수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정부 지원금도 조금씩 받는 사회인리거의 신분이었지만 사실은 야구가 국기였던 쿠바의 최상위 리그 선수들로 아마추어를 가장한 프로선수들이었던 것이다. 흑인, 백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운동능력과 파워가 뛰어난 팀으로 트리플A 수준에 일부 선수들은 MLB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팀이었다.


미국이 대학생 내보내고 일본이 진짜 사회인리거 내보내는 동안 쿠바는 일류 선수들을 내보내서 수십년 간 양민학살을 해댔던 것이다.



2. 미국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선수들(AAA,AA,A,루키리그)은 프로리그 소속이라 아마추어 대회에 당연히 참가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국은 대학생들을 내보냈다. 딱 봐도 대충 어떤 수준이었을지 굳이 따질 것도 없지만 그냥 자세히 알아보자.


최빠 교주에 의하면 유독 최동원을 상대하는 미국 타자들만 MLB 즉시전력감 정예 대학생들이 특수조련을 받고 나온 것처럼 떠들지만 이는 당연히 사실과 다르다. 드래프트 최상위 라운드 지명 위주로 편성된 것도 아닌데다가 메이저리그 직행예정인 선수들이 굳이 신경쓸 대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대학 재학중인 어린 선수들이라 경험도 없고 기량이 정점에 가지도 않은 선수들이었다.


내친 김에 1978년 세계선수권과 1981년 대륙간컵 미국팀 명단을 찾아보았다.


http://web.usabaseball.com/events/events.jsp?ymd=20090202&content_id=36141


이 곳에서 선수 이름을 확인하고 베이스볼 레퍼런스 검색을 이용하여 찾은 정보다. 대회 시점 이후에라도 받았던 드래프트 지명 라운드도 그냥 포함시켜줬고 최종 커리어도 포함했다.



1978년 세계선수권 미국 팀 명단


정보를 못 찾은 선수들도 있는데 어차피 기록이 안좋아서 그런거니 상관없다. 커리어 1라운드 지명자들은 4명. 3라운드가 2명이고 5라운드가 1명이다. 그냥 고만고만한 대학선수들에 소수의 유망주들을 포함시킨 스쿼드였다.


훗날에라도 MLB커리어가 있는 선수들은 10명. 그나마 메이저리그 A급 선수로 성장하는건 아무도 없었고 그나마 경력이라고 할만한건 Tim Wallach하고 Tim Leary 정도. 타자는 Tim Wallach 하나다. 나머지는 그냥저냥한 성적 아니면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었다.



1981년 대륙간컵 미국 팀 명단


78년보다는 조금 나은 스쿼드다. 정보미확인 선수들은 어차피 경력이 없거나 미미할 것으로 추정된다. 16명 중에 커리어 1라운드 지명자는 6명이다. 그런데 1라운드 지명받고도 MLB 경력이 없는 선수들이 둘이나 된다. 그리고 MLB경력자들은 7명인데 역시나 이후에라도 확실한 족적을 남긴 선수는 하나도 없었다.


78년이나 81년이나 솔직히 강타자 라인업이라고 우기는게 웃기는 수준이다. 이건 중증 최빠 혹세무민과는 달리 알루미늄 배트가 쟁점이 아니다. 어차피 수준이 낮은 타자들인데다가 기량 만개하기도 전인 어린 대학생들 가지고 북중미 강타자 드립치는게 그냥 웃긴 일인 것이다. 뻥튀기는 적당히 해야 한다. 미국의 고만고만한 대학 선수들이 알루미늄 배트 들었다고 메이저리그급 타자로 변모하는게 아니다.


선동열은 미국 허접 대학생들과 일본 사회인들을 상대했다고 주장하는게 중증 최빠 논리인데 솔직히 그건 최동원도 마찬가지다. 물론 최동원이 더 많이 던졌고 잘 던진 건 사실이다. 선동열이 상대한 미국 선수들 수준도 살펴보자. 귀찮아서 대충만 훑었다.


1982년 세계선수권


Wallace Joyner 3라운드 지명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16년간 .289/.362/.440 204홈런 1106타점을 기록한 강타자로 성장.

Chris Sabo 2라운드 지명 MLB 20홈런 시즌이 3번 10홈런 시즌도 3번.

Bill Swift 1라운드 2픽 MLB 13년 통산 94승 3.95 1599.2이닝.


1983년 대륙간컵


Jeff Ballard 7라운드 MLB 7년간 773.1이닝 41승 53패 4.71. 18승 8패 3.43 215.1이닝 시즌도 있음.

Tim Belcher 2차 1라운드 1픽. MLB 146승 투수.

B.J. Surhoff 1라운드 1픽. MLB 19년 2313경기 .282 .332 .413 188홈런.

Mark Mcgwire 1라운드 10픽.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로 성장.


사실 미국이 최상위 라운드 특급 유망주로 팀을 꾸린건 84년 LA올림픽이 최초였다. 20명중 18명이 1라운드 지명자들.



3.일본


일본은 1930년대부터 프로야구가 있었고 국민적 스포츠였다. 프로야구 NPB 소속 선수들은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인리그 선수들과 소수의 대학생들이 참가했다. NPB는 1955년부터 이미 2군 리그가 정착되어 있었고 결국 사회인리거들은 일본의 3류급 선수들이었다.


당시 NPB는 진작부터 외국인 선수들이 뛰고는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와의 격차가 지금보다 심했고 대략 AA에서 AAA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했던 일본 사회인 선수들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나이가 좀 있는 편이라 경험에서는 우위에 있었고 그 덕에 미국 대학생들도 가끔 이기고 그랬다.



4. 한국


당시 한국은 프로야구가 없었기 때문에 쿠바처럼 자국의 1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실업리그 선수들 위주였고 소수의 대학생들이었다. 초창기라 선수들의 전반적인 수준은 많이 낮았지만 백인천의 케이스를 보더라도 극소수의 선수들은 NPB 1군에서 뛸 수 있는 실력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최동원처럼 메이저리그 즉시전력감도 있었다.


참고로 선동열이 국대 에이스로 활동한 82~84년은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시기였다는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최동원이 국대 나올 때는 프로출범 이전이라 한국의 1진급 선수들이 아마추어 대회에 나올 수 있었지만 선동열 때부터는 좋은 선수들이 프로로 죄다 빠지면서 아마추어 국대 전력이 크게 약화된 게 사실이다. 물론 선동열의 국대 퍼포먼스가 그냥 그랬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최동원이 상대한 국제대회 타자들의 레벨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1위 쿠바 - AAA전력에 소수의 MLB급 선수들로 아마추어 양민학살의 달인들

2위 미국 - 알루미늄 배트만 들었다 뿐이지 경험도 없고 기량만개 이전의 대학생들로 대부분 포텐도 낮았음

3위 일본 - 일본 내에서 3류급 선수들


그 외 중남미 국가들은 저들한테도 밀리고 사실상 동네북. 어차피 중남미 프로선수들이나 메이저/마이너 소속 선수들은 아마추어 대회에 나오지도 못했다. 순위권에서 아예 보인 적이 없는 콜롬비아, 네덜란드, 캐나다... 이런 애들은 거론할 가치가 있나?




최동원의 국제대회 퍼포먼스 문제


그리고 최동원의 국제대회 연투와 퍼포먼스에 대해서도 신격화가 심하게 되어 있다. 국제대회 연투 등판일지는 최동원만이 가능한 전무후무한 투신의 업적이라는 식으로 뻥튀기를 하는데 문제는 최동원과 마찬가지로 국제대회 에이스 퍼포먼스를 보인 투수들이 꽤나 있었다는 것이다.



최동원

78년 10경기 일정 33.1이닝 최다승 타이, 탈삼진 (우천취소까지 36.1이닝)

81년   9경기 일정 39.1이닝 올스타


이선희

77년 14경기 일정 48.2이닝 MVP, 최다승, 최다이닝, 최다구원

80년 11경기 일정 40.1이닝 올스타, 최다승, 최다이닝


모리 시게카즈

78년 10경기 일정 32.2이닝 0.28 40K(2위) 최다승타이


나가토미 히로시

84년 13경기 일정 40.0이닝 2.48 32K


장승슝

83년 10경기 일정 36.1이닝 1.98 최다이닝 대만사상 최초 쿠바전 선발 승리투수. 최동원도 못한 기록.

84년 12경기 일정 46.0이닝 0.98 9등판 최다이닝 최다등판


최동원이 허접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분명 대투수였다. 당연히 최동원이 이선희, 모리, 나가토미, 장승슝보다 뛰어난 투수일 것이다. 그런데 무슨 종교도 아니고 모든 요소까지 뻥튀기하면서 모친출타한 신격화를 일삼는건지 그저 사실관계만 명확하게 하고 싶다.


최동원을 지나치게 띄우기 위해 당시 국제대회 타자들의 수준을 뻥튀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다른 선수들의 국제대회 활약을 폄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최동원이 대단한 투수인건 사실이지만 뭐가 되었든 종교놀이 신격화는 안하는게 좋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