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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과 차범근의 사례로 분석해보는 가치평가 야구


차범근의 수생활이 나무위키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더군요.


당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였고 독일에서의 위상과 업적도 엄청난 수준입니다. 펠레, 마라도나급은 당연히 오버겠지만 당시 유럽최고급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의 평가가 저 정도로 높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독일 진출과 관련해 한가지 특이한 경력이 있는데요.



1979년 1월 1일 기사입니다. 현대그룹이 차범근 영입해서 축구단을 창단하려고 했는데 차범근의 독일행으로 창단을 포기했고 이게 결국 프로축구 출범연기로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1978년 12월에 축구협회는 차범근을 독일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차범근과 최동원의 공통점은 당시 전국구 스타이자 한국 축구/야구 최고의 선수들이었고 국가대표로 많은 부름을 받았으며 빅리그에서 입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병역과 해외리그 진출에 관한 부분입니다.


차범근은 복무기간 단축의 조건으로 공군에서 복무한 뒤 78년 12월 다름슈타트에 입단했습니다. 위의 기사처럼 당시 축구계는 프로축구 출범이 목표였음에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차범근의 해외진출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체육회 등의 압력도 받고 복무기간 단축이 무산되면서 차범근은 79년 1월 공군에 다시 복귀해야 했습니다. 차범근은 79년 5월에 만기 제대를 하고나서야 프랑크푸르트로 다시 진출할 수 있었고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개인의 커리어를 쌓고 한국을 알렸습니다. 대신 프로축구는 출범이 늦어졌고 초창기부터 프로야구 인기에 밀리게 되었습니다.


최동원은 국제대회 상위입상의 공로로 타 종목 포함 여러선수들과 함께 병역면제를 받았는데 5년간 해외가 아닌 국내리그에서 뛰어야만 면제를 시켜준다는 조항으로 발목을 잡혔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있던 야구계는 최동원의 해외진출을 도와주지 않았고(81년) 최동원은 83년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게 되면서 해외리그 커리어를 쌓지 못했습니다. 대신 한국최고의 투수로서 프로야구 정착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런거 보면 당시 축구계던 야구계던 상이한 선택 모두가 이해는 됩니다. 프로리그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를 해외로 보내준다면 선수 개인의 꿈과 국가 위상을 올리는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국 프로리그 정착에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니까요.


축구협회가 차범근의 독일행을 불허하고 프로축구 원년 멤버로 뛰게 했다면 차붐의 위상이나 독일에서의 국위선양같은건 아예 없었겠지만 프로야구보다 먼저 출범해서 정착했을 K리그의 위상과 저변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었을 겁니다.


최동원이 만약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차범근처럼 한국을 알리고 개인 커리어를 쌓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대신 초창기 KBO 프로야구 출범과 정착은 힘들었을 겁니다. 여담인데 물론 성공 가능성이 높은 대투수였습니다만 만약 최동원을 메이저리그에 보내고 최동원 없이 프로야구를 출범시켰거나 혹은 출범을 늦췄다가 최동원이 의외로 메이저리그에서 평범한 성적만 기록하고 돌아왔다면 여러모로 아쉬웠겠죠. 어쨌든 결과적으로 당시 야구계는 최동원 개인의 꿈을 희생시켜 프로야구 출범과 정착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결국 차범근의 경우나 최동원의 경우나 어떤 선택이 절대적으로 더 좋은 가치를 가지느냐 하고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그런 선택이었던 겁니다.


그나마 최동원 사후에 개인의 꿈을 불행하게 희생당했지만 프로야구 출범과 정착으로 한국야구에 크게 기여한 최동원의 희생과 업적을 기리고 기억하자는 의미로 KBO 최고투수상인 최동원상이 제정되었습니다.



<출처> http://cafe.naver.com/baseballtown/3097